공지 | 경주최씨집성촌 미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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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서관 지킴이 (14.♡.52.179) 작성일21-02-03 11:44 조회3,5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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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집성촌 유래
미사리는 사적 제269호 선사 유적이 있는 자연의 섬으로 행정구역은 미사동으로 한강 본류인 뒷강과 지류인 앞강은 부드럽고 고운 은빛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명사십리였다. 미사리는 한강에서 가장 큰 섬으로 당정섬과 둔지섬까지 연결되었던 섬의 중심부였으나 1972년 팔당댐과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둔지섬과 당정섬이 없어지고 1979년 강변도로가 개설되면서 86·88 국제스포츠대회로 조정경기장이 건설되어 지금은 섬이 아닌 연육이 되었다. 미사촌에 최초로 경주최씨 집성촌이 형성된 것은 430여년 전으로 통일신라말 대문호이자 한문학의 비조이신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의 18세손인 회중공(최근, 1562~1623)에 의해서다. 회중공은 조선(명종17) 1562년 포천에서 출생하여 율곡으로부터 학문을 닦고 과거를 준비하던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정이품 자헌대부에 가자되었으나 정국이 붕당의 갈등으로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던 중, 미사촌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 시기는 1594년으로 외아들 군원공(希順)과 미사촌을 새 보금자리로 정착하게 되었다. 미사리는 물과 관련하여 예전부터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성황제가 400여 년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최씨가 많을 때는 300여 호가 살았으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여 하남을 비롯하여 수도권에 1만여 명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미사리는 땅이 비옥하고 토심이 깊어 지금은 영농을 주업으로 하는 많은 성씨들이 마을이 이루고 있다. 미사리 출신으로는 최인규 前장관(외자청장 국회의원 교통부장관 내무부장관) 최종윤 국회의원, 형애장학재단 최형규 이사장, 최완기 이화여대교수, 최종세 동국대교수가 미사리 출신이다. 경주최씨는 2009년 미사강변도시로 개발되면서 구산과 황산 선산이 수용되어 보상금으로 2014년 시조이신 고운 최치원 선생의 큰 뜻을 숭모하고 학문적 가치를 드높이고 교육과 문화의 장으로 지역독서문화 창달을 위해 덕풍동 선산에 사립공공도서관인 고운최치원도서관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4年 11月 11日
하남 경주최씨 회중공파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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